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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한국사능력검정

고려 시대

1. 고려의 후삼국 통일

 

왕건의 성장 : 송악(개경)의 호족 출신인 왕건은 해상 세력과 연합하여 세력을 키움, 궁예의 밑으로 들어가 한강 유역 점령, 금성(나주) 점령 등 큰 공을 세우고 광평성(마진, 태봉의 최고 행정 기관) 시중에 오름

 

고려 건국(918) : 신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뒤 고구려 계승을 내새워 고려를 건국하고 철원에서 송악으로 천도(919)하였으며 연호를 '천수'로 정함, 후백제 건국(900) - 후고구려 건국(901) - 고려 건국(918) - 

공산 전투(927) : 후백제가 신라를 침략하자 이를 돕기 위해 출전한 고려군이 공산(대구)에서 패배

고창 전투(930) : 고려군이 후백제군을 고창(안동)에서 크게 격퇴함, 이후 후백제와의 경쟁에서 우위 확보

발해 유민 포용(934) : 거란의 공격으로 발해가 멸망하자(926) 발해의 왕자 대광현이 발해 유민을 이끌고 고려로 귀순

견훤 귀순, 신라 항복(935) : 후백제의 권력 다툼으로 견훤이 왕건에게 귀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나라를 더 이상 유지 할 수 없다는 판단하여 스스로 항복

후삼국 통일(936) : 일리천 전투, 황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치고 후삼국 통일

 

태조왕건(1대 왕, 918 ~ 943)

호족 회유 : 호족의 딸과 혼인하고 왕씨 성을 하사함(사성 정책)

역분전 지급 :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공로와 인품에 따라 나누어 준 토지, 논공행상의 성격 강함

사심관 제도 : 중앙의 고위 관리에게 출신 지역의 호족을 관리하게 하는 제도

기인 제도 : 지방 호족의 자제를 수도에 파견하게 된 제도(인질의 성격이 강함)

민생 안정책 : 빈민 구제 기관인 흑창 설치

왕권 안정책 : [정계], [계백료서]를 통해 관리들이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하고, 후대 왕들이 지켜야 할 훈요 10조를 남김

북진 정책 : 고구려 계승 의식,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평양)을 중시하고 반거란 정책을 핌(만부교 사건, 낙타)

 

광종(4대 왕, 949 ~ 975)

왕권 강화 추진 : 태조가 호족 회유 정책으로 많은 아들을 남기고 죽자 뒤를 이은 혜종과 정종 때 치열한 왕위 다툼이 일어남(왕규의 난, 혜종), 광종은 고려 초기 치열한 왕위 다툼으로 불안정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 후주의 쌍기를 영입하여 개혁 정치를 추진

노비안검법 실시 :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들을 해방,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세력 약화, 국가 제정 상승(농민들의 세금)

과거제 실시 : 쌍기의 건의로 실시, 반대하는 호족 다 죽임(피의 숙청기, 신,구 세력의 교체 도모)

공복 제정 : 관리의 복색을 관등에 따라 구분함, 위계질서 확립

송과 통교 : 거란을 견제하고자 송과 교류

제위보 설치 : 빈민의 구호 및 질병 치료를 위해 설치한 빈민 구제 지금, 농민 생활 안정

숭불 정책 : 화엄종 승려 균여를 통해 귀법사 창건

 

경종(5대 왕, 975 ~ 981)

시정 전시과 실시 : 인품과 관품을 고려하여 전,현직 관료를 대상으로 전지와 시지를 지급

 

성종(6대 왕, 981 ~ 997)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할 것을 주장한 최승로의 시무 28조, 통치 체제 정비, 불교지만 유교 정치

체제 정비

중앙 정치 기구 정비 : 당의 3성 6부제를 기반으로 태봉과 신라의 제도를 참작하여 2성 6부제 중앙 관제 마련

지방 통치 기구 정비 : 주요 지역에 12목 설치, 지방관 파견, 지방 세력 통제를 위해 향리제 정비

유교 교육 진흥 : 개경에 최고 교육 기관 국자감 설치, 유학부와 기술학부로 구성, 12목에 경학박사, 의학박사 파견,과거제 정비

민생 안정 : 빈민 구제 기관 의창 설치

 

 

 

2. 중앙 정치 조직

 

태조는 태봉의 최고 정무 기관인 광평성을 비롯하여 그 관제를 일부 답습함, 신라의 것과 당의 관제 일부 수용

2성 6부제(성종, 6대 왕)로 정비(중서문하성, 상서성)

당,송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고려의 실정에 맞게 조정,운영함

 

중서문하성 : 고려의 최고 관서, 국정을 총괄하며 재신과 낭사로 구성, 수장은 문하시중

재신 : 2품 이상의 관리, 정책을 심의,결정

낭사 : 3품 이하의 관리, 정책을 건의하고 잘못을 비판 가능

상서성 : 6부를 통솔하고 중서문하성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

6부 : 이,병,호,형,예,공부 - 행정 실무 담당

중추원 : 군사 기밀을 담당하는 추밀(2품 이상)과 왕명 출납을 담당하는 승선(3품 이하)으로 구성

삼사 : 화폐와 곡식의 출납에 대한 회계 담당

어사대 : 관리들의 비리 감찰, 풍속 교정을 담당

대간 :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어사대의 관원으로 구성, 관리 임명의 동의권을 행사하는 서경,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간쟁, 잘못된 왕명을 돌려보내는 봉박의 권리를 지님, 정치권력의 견제와 균형 추구

 

도병마사 : 국방부

식목도감(도감, 임시 기구) : 대내적인 법의 제정, 격식 관장(국가적인 행사, 계획)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 등 2품 이상의 고위 관리들이 모여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는 재추회의, 귀족정치,고려의 독자적인 기구

 

지방 행정 조직

5도 : 일반 행정 구역으로 안찰사(임기 6개월, 일정한 근무지 없이 도내 시찰)를 파견하여 순찰하도록 함

양계 : 북방의 국경 지대에 군사 행정 구역으로 양계(동계,북계)설치, 병마사 파견

경기 : 개경 주변을 경기로 삼아 개경부에서 직접 통치함

3경 : 풍수지리설을 기반으로 개경, 동경, 서경

향,부곡,소 : 특수 행정 구역으로 일반 군현보다 지위가 낮고 조세가 높음

속현 : 고려 시대에는 모든 군현에 지방관을 파견하지 못함,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더 많음, 속현은 향리가 지배 

 

군사 조직

중앙군 : 2군(국왕 친위 부대)과 6위(수도와 국경 방어)

직업군인으로 편성, 복무의 대가로 군인전을 받음, 중방 : 2군 6위의 상장군과 대장군이 모인 군사 기구

지방군 : 16 ~ 60세 미만의 장정으로 구성, 주진군 : 양계에 주둔하는 상비군, 주현군 : 5도와 경기를 담당, 예비군

 

관리 등용 제도

문과 : 제술과(문학적 능력과 정책을 시험), 명경과(유교 경전의 이해 능력을 시험)

잡과 : 의학,천문,법률,지리,음양 등 기술관을 뽑는 시험

승과 : 승려를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 불교 경전의 이해 능력을 시험

좌주 문생 관계 : 과거를 주관하는 지공거와 급제자는 각각 좌주와 문생이라 하여 정치적 관계를 형성함

음서 제도 : 5품 이상 고위 관료의 자손에게는 과거를 거치지않고 관리가 될 수 있는 특권 부여, 귀족적 특징

 

 

 

3. 문벌 사회와 무신 정권

 

문벌 사회의 성립 :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 후 문벌이 형성됨, 왕실이나 귀족들 상호 간의 폐쇄적인 혼인을 바탕으로 가문의 지위를 세습함, 경원 이씨(이자겸), 경주 김씨(김부식), 해주 최씨(최충), 파평 윤씨(윤관), 안산 김씨(김은부)

특권 : 음서를 통해 관직과 공음전을 세습하였고 권력을 이용하여 토지를 불법적으로 겸병

 

문벌 사회의 동요

이자겸의 난(1126) : 경원 이씨 가문의 계속된 왕실과의 혼인으로 80여년간 정권 유지, 위협을 느낀 인종(17대왕, 1122 ~ 1146)은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였고 이를 눈치챈 이자겸은 척준경과 함께 먼저 반란을 일으킴, 척준경의 배신, 실패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

구분 개경파 서경파
성격 중앙의 문벌(김부식) 지방 출신 개혁적 관리(묘청, 정지상)
사상 유교 사상, 사대 정책
신라 계승 의식 표방
풍수지리설, 전통 사상, 북진 정책
고구려 계승 의식 표방
주장 유교 이념을 통한 사회 질서 확립
서경 천도 반대
왕권 강화를 위한 혁신적 개혁 주장
서경 천도, 금 정벌, 칭제 건원 주장
경과 김부식 등 개경 세력의 반대로 서경 천도 실패,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 정부군에 의해 진압
의의 자주적 전통 사상과 사대적 유교 정치사상의 충돌, 문벌 사회 분열의 가속화

 

무신 정변의 성립과 변천

이자겸의 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등에 의해 문벌 사회가 크게 분열됨

무신에 대한 차별 대우와 군인전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하급 군인들의 불만이 높아짐

 

무신 정변(1170) : 보현원에서 정중부,이의방 등의 주도 아래 무신 정변 발생, 다수의 문신 제거, 의종(18대 왕)을 폐위시키고 명종(19대 왕) 옹립, 무신 회의 기구인 중방을 중심으로 정권 장악, 무신들의 관직 독점과 토지,노비,사병 확대, 무신들 간의 권력다툼 심화, 전국 각지에서 반란 일어남

 

무신 정변 후 집권자가 자주 바뀌는 혼란이 이어짐

무신 간의 권력 다툼 : 이의방,정중부(중방, 정중부가 이의방 죽임) - 경대승(중방,도방, 정리해고 당함) - 이의민(중방, 정중부 죽임) - 최충헌(교정도감, 이의민 죽임)

 

최씨 무신 정권의 성립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집권한 이후 4대 60여년간 최씨 무신 정권이 이어짐

 

최충헌의 정치

교정도감 설치 : 최고 정치 기구로 교정도감을 설치, 장관인 교정별감은 최씨 집권자들이 세습, 권력 장악

봉사 10조 제시 : 사회 개혁책, 군사 정변을 합리화하는 성격이 강함, 개혁 이루어지지 않음

도방의 부활 : 사병을 육성하여 경대승 때의 도방을 확대,강화함, 삼별초와 함께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 역할을 함

 

최우의 정치

정방 설치 : 자신의 집에 독자적인 인사 행정 기구 설치, 인사권 장악, 권력의 끝판왕

서방 설치 : 문인들의 숙위 기관으로 서방을 설치함, 자문 기구

삼별초 조직 : 치안을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시작, 좌별표,우별초로 분리되고 신의군이 추가되어 삼별초 완성,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 되었으며 몽골 침입 당시 끝까지 저항함

대몽 항쟁 : 몽골이 침입하자 최씨 무신 정권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장기 항전에 대비함,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을 대신할 팔만대장경 조판

 

농민과 천민의 봉기

이의민(천민 출신 무신 정권의 집권자)의 집권으로 백성들 사이에 누구나 신분이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짐

망이,망소이의 난(1176) : 공주 명학소(특수 행정 구역)에서 '소'의 차별에 반발하여 봉기

만적의 난(1198) :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의 주도로 봉기, 신분 해방 운동

 

3-1. 당시의 중국

 

당나라(619 ~ 907)는 황후인 측천무후가 조정을 장악하고 당의 황제를 황태자로 격하시키고 국호를 잠시 주(周) (690 ~ 705)로 바꾼다. 측천무후의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공포 정치를 펼쳤으나, 인재 중심의 정치 역시 펼쳐서 백성들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측천무후 이후 다시 국호를 당으로 바꾸게 된다. 후량(오대십국 시대의 오대 중 첫 번째 왕조)에게 멸망당한다.

 

오대십국 시대(907 ~ 960)는 화북의 정권을 다투던 5개의 대국과 나머지 10개의 소국이 혼재했던 시기이다.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송(宋) (960 ~ 1279)이 다시 중원을 통일하였다.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하였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로 상비 해군을 창설하였다. 또한 문화 정치를 펼친 왕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몽골 지역과 만주 지역을 차지한 거란족이 세운 국가인 요(遼) (916 ~ 1125)에 의해 베이징 이북의 많은 지역을 빼앗기고, 요나라와 서하에 사실상의 조공을 납부하며 별 위세를 떨치지 못하다가, 요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여진족이 요나라를 정복하고 세운 금(金) (1115 - 1234)에게 화북 지방을 빼앗기고 멸망한다. 이 때까지를 북송(北宋)시대라고 하고, 이후 북송의 황실을 계승한 왕조를 남송(南宋)이라고 한다. 몽골 제국과 함께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몽골 제국을 계승한 원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4. 고려의 대외 관계

 

거란의 침입과 격퇴 : 야율아보기가 거란의 부족을 통일하고 요 건국(916), 거란에 의해 발해 멸망(926)

고려의 대응 : 건국 초기부터 거란에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고(훈요 10조, 만부교 사건) 송과는 친교를 맺고 북진 정책을 추진함, 정종(3대 왕) 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농민으로 구성된 예비군)을 설치함

 

거란의 침입

1차 침입(성종, 6대 왕, 993) : 소손녕의 송과의 외교 단절 요구, 서희의 외교 담판, 강동 6주 획득

2차 침입(현종, 8대 왕, 1010) :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목종(7대 왕)을 폐위한 것을 구실로 침입, 개경이 함락되고 나주까지 피난을 감

3차 침입(현종, 8대 왕, 1018) : 강동 6주 반환 거부,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

결과 : 개경에 나성을 쌓고, 압록강 어귀에서 동해안의 도련포에 이르는 천리장성 축조, 송과 거란(요) 사이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함, 이후 요와 친선 관계 수립, 부처의 힘으로 거란을 물리치고자 초조대장경 조판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12세기 초 여진족이 통합을 이루면서 고려 국경까지 남하하여 충돌, 윤관의 건의에 따라 기병을 보강한 별무반 편성,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 추진, 여진족을 북방으로 축출하고 동북 지방 일대에 9성 축조(1107)

세력을 키운 여진이 금 건국(1115), 요(거란)을 멸망시킨 후, 고려에 군신 관계 요구, 당시 집권자 이자겸은 정권 유지를 위해 금의 요구 수용(사대 관계, 북진 정책 실패)

 

고려 후기의 대외 관계

몽골과의 접촉 : 몽골에게 쫓겨 내려온 거란을 고려와 몽골이 연합하여 격퇴, 몽골이 고려에 무리한 조공 요구

 

몽골의 침입

1차 침입(고종, 23대 왕, 1231) : 저고여 피살 사건을 구실로 살리타의 몽골군 침입, 박서의 귀주성 전투(1231)로 격퇴, 몽골과 강화를 체결하고 몽골군이 철수하자 최씨 무신 정권(최우)는 강화도로 천도

2차 침입(고종, 23대 왕, 1232) : 고려의 개경 천도와 친조를 요구하며 살리타를 앞에서 침입, 김윤후(5차 침입 때 몽골군 격퇴, 충주성 전투)가 적장 살리타를 사살하여 물리침(처인성 전투), 초조대장경(고려 최초의 대장경) 소실

3차 침입(고종, 23대 왕, 1235 ~ 1239) : 경주까지 침입하여 황룡사 9층 목탑(선덕여왕) 소실, 팔만대장경 조판 시작

 

강화와 개경 환도

최씨 정권의 몰락 : 김준이 최의를 몰아내고 몽골과 강화를 추진함

무신 정권의 최후 : 원종(24대 왕)이 무신 임유무를 살해하면서 종료됨, 원종의 개경 환도(1270)

 

삼별초의 저항

삼별초는 무신 정권의 핵심 부대이자 몽골과의 항쟁에 주도적이었음

배중손 등이 왕족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개경 정부에 반기를 듦, 강화도,진도,제주도로 옮겨 가며 항쟁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원,명(몽골족이 중국 대륙에 세운 나라) 교체기 원의 국력 쇠퇴, 한족 농민 반란군인 홍건적이 봉기를 일으킴

홍건적 1차 침입 : 이승경,이방실 등이 격퇴

홍건적 2차 침입 : 개경 함락, 공민왕(31대 왕)이 복주(안동)까지 피신, 최영,이성계,이방실 등이 격퇴, 개경 탈환

왜의 침입 : 14세기 공민왕과 우왕 때 창궐, 외교 교섭(정몽주)을 시도했으나 실패

우왕 때 최무선의 화통도감(화포, 진포대첩) 설치, 최영(홍산 전투), 이성계(황산 대첩) 등의 왜구 토벌, 창왕 때 박위의 쓰시마섬 정벌

 

 

 

5. 공민왕의 개혁 정치와 고려 멸망

 

원 간섭기의 정치

부마국(사위의 나라) 체제 성립 : 몽골과 강화 후 고려는 국가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내정 간섭을 받음

왕실 호칭,관제 격하 : 제후국의 수준에 맞게 격하됨, 국왕 묘호에 '충' 사용

정동행성 설치 : 원이 일본 원정을 위해 설치하여 군대와 물자를 요구, 원정 실패 이후 부속 기구인 이문소를 통해 고려 내정에 간섭함

만호부 설치 : 원의 영향으로 설치된 군사 조직, 고려 군사 조직에 영향력 행사

다루가치 파견 : 원의 관리인 다루가치를 감찰관으로 파견하여 내정을 간섭함

영토 상실 : 쌍성총독부, 동녕부, 탐라총독부 설치

원의 내정 간섭 영향 : 특산물 수탈, 응방을 설치하여 사냥용 매 수탈, 공녀와 내시 등 차출, 고려에 변발, 호복, 족두리, 연지 등의 몽골 풍습 유행, 원에서는 고려 풍습 유행, 공녀 차출을 피하게 위해 조혼 풍습이 유행, 성리학,목화,화약,서양 문물 등 새로운 문물의 전래

 

권문세족의 등장(친원파 세력)

원 세력을 배경으로 고위 관직(도평의사사 장악)을 장악하였고, 다른 사람의 토지를 불법적으로 빼앗아 대농장을 경영 

 

원 간섭기 개혁 노력

충렬왕(25대 왕) : 전민변정도감, 동녕부, 탐라총관부 회복

충선왕(26대 왕) : 사림원 설치(신진 관리 중용, 개혁 추진), 원에 만권당 설치(고려 유학자와 원 유학자들과의 교류)

 

공민왕의 개혁 정치

반원 자주 정책 : 14세기 중엽, 원의 쇠퇴, 원,명(몽골) 교체기, 신진 사대부의 성장

반원 정책 : 친명 외교를 추진하고 기철 등의 친원 세력 숙청, 몽골풍 금지

관제 복구 : 격하된 호칭과 관제를 복구함(중서문하성, 상서성),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영토 수복 : 쌍성총독부를 무력으로 탈환, 요동 지방 공략(이성계, 이인임)

 

왕권 강화 정책 

국내 정세 : 신돈 중용, 정몽주,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의 중앙 진출

유교 정치 : 성균관 중건, 과거제 정비를 통하여 신진 관료를 육성

정방 폐지 : 최씨 무신 정권기 최우가 설치한 인사 행정 기구인 정방을 폐지함

전민변정도감 설치(임시 기구) :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국가 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 신돈(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을 중심으로 권문세족이 불법적으로 약탈한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강제로 노비가 된 사람은 양민으로 해방 

결과 : 신돈의 정치적 미숙, 신진 사대부의 세력 미약, 권문세족의 반발로 공민왕 피살, 원의 압력,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정세 불안 등이 실패의 원인이 됨

 

신진 사대부의 성장과 고려의 멸망

대부분이 지방 향리 출신으로 학문적 소양을 쌓아 과거를 통해 중앙 관리로 진출, 공민왕 때 개혁 정치에 힘입어 성장

개혁 노력 : 권문세족의 비리와 불법 행위 비판, 성리학을 수용하고 불교의 폐단을 비판

한계 : 관직 진출에 제한이 있었으며, 경제적 기반 미약, 고려 말 온건파(정몽주)의 급진파(정도전)로 나뉨

 

원,명 교체기에 원의 세력이 쇠퇴하고 새롭게 등장한 명이 성장함, 외적의 잦은 침입으로 사회적 혼란, 이성계 등 신흥 무인 세력의 성장함, 명의 철령 이북 땅 요구, 최영이 요동 정벌 주장, 이성계의 4불가론, 위화도 회군(1388), 정권 장악

 

과전법 공포(1391) : 조준 등의 건의로 신진 사대부의 경제적 기반 마련을 위해 과전법 실시함

고려의 멸망(1392) : 신진 사대부가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뉨, 정도전,남은 등의 급진파는 정몽주(선죽교) 등의 온건파를 제거하고 이성계와 결탁,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 건국(1392)

 

 

 

6. 고려의 경제

 

중농 정책 추진(농민 생활 안정, 국가 재정 확보), 농업 경제를 기반으로 한 자급자족적인 경제 구조로 상공업 발달 부진

수취 제도 : 토지(논과 밭)를 비옥도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 역 : 16 ~ 59세 남자의 노동력 징발, 군역과 요역 부과

재정 운영 : 호부(6부 중 하나로 재정을 담당)와 삼사 설치, 조세 수취와 집행은 각 관청이 담당

 

전시과 제도

역분전(태조, 1대 왕, 940) :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공로자에게 인품과 공로에 따라 토지 지급

시정 전시과(경종, 5대 왕, 976) : 관직 고하와 인품을 기준으로 전,현직 관료들에게 전지와 시지 지급

개정 전시과(목종, 7대 왕, 998) : 관직만 기준으로 전,현직 관료들에게 지급 

경정 전시과(문종, 11대 왕, 1076) : 현직 관료에게만 지급, 무신 대우 개선

 

관리들에게 관직에 따라 18등급으로 나누어 전지와 시지 지급, 수조권(조세를 대신 걷을 수 있는 권리, 소유권은 아님) 지급, 죽거나 관직에서 물러날 때에는 토지를 국가에 반납하도록 함

 

토지 제도 

공음전 : 5품 이상의 귀족 관료에게 지급, 세습 가능, 음서와 함께 귀족들의 특권적 생활 기반

구분전 : 하급 관리, 군인의 유가족에게 생활 대책비로 지급

과전 : 문무 관리에게 지급

 

귀족들의 토지 세습, 독점으로 지급할 땅이 부족해짐, 경기 8현의 토지를 녹과전으로 지급(원종, 24대 왕, 1271), 하지만 권문세족의 토지 독점 폐단을 방지하지 못함,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대농장을 경영하여 국가 재정이 악화되고 농민 몰락

 

고려와 경제 활동

민전을 경작하거나 타인 소유의 토지 경작, 품팔이를 통해 생계 유지

농지 확대(진전, 황무지 개간), 12세기 이후 저습지, 간척지 개간에 참여

농법 개량 : 농기구와 종자 개량,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 시비법(비료,거름)의 발달로 휴경지 감소, 문익점의 목화 재배

밭농사 : 2년 3작의 윤작법이 보급

논농사 : 고려 말 남부 지방 일부에 모내기법(이양법) 보급,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보급

농서 : 고려 후기에 중국 화북 지방의 농법을 집대성한 원의 [농상집요] 소개

 

상업의 발달과 대외 무역

도시 : 경시서(시전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와 상평창(물가 조절 기구) 설치, 개경의 시전과 관영 상점 운영

지방 : 행상의 활동이 주를 이룸

 

건원중보 : 성종(6대 왕) 때 주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 중국 화폐와 구별하기 위해 뒷면에 동국이라는 글자 

주전도감(화폐 주조 기관) 설치 : 숙종의 아우, 의천이 화폐의 유통을 건의함, 삼한통보,해동통보,은병 발행 

 

대외 무역 : 고려는 송, 거란, 여진, 일본, 아라비아 등과 무역 관계를 맺음, 송과의 무역이 가장 활발했음

예성강 하구에 위치한 벽란도(개경 근처)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

 

 

 

7. 고려의 사회

 

신분 제도

왕족을 비롯한 5품 이상의 고위 관료로 구성, 음서나 공음전의 혜택을 받으며 정치,경제,사회적 특권을 향유함

지배층 : 문벌 귀족(고려 중기) - 무신 세력(무신 집권기) - 권문세족(고려 후기)

중류층 : 말단 행정직 담당, 잡류, 남반, 향리

양민 :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백정), 조세,공물,역 부과, 향,부곡(농업), 소(수공업,광업)로 나뉨, 소의 양민들은 일반 농민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 거주 이전 금지

노비 : 부모 중 한명이 노비면 노비로 결정(일천즉천)

 

백성의 생활 모습

향도의 등장 : 매향 활동을 하던 불교의 신앙 조직, 불상,석탑,사찰 건립에 주도적 역할, 후기에 이르러 신앙적인 활동에서 마을 공동체 생활을 주도하는 농민 조직으로 발전

 

사회 제도

의창(성종, 6대 왕) : 평시에 곡물 저장, 흉년에 빈민을 구제, 고구려의 진대법과 유사, 태조 때의 흑창의 확대 개편

상평창(성종, 6대 왕) : 곡식과 베의 값이 낮을 때 사들이고 흉년이 들면 싸게 파는 물가 안정 기관, 개경,서경,12목에 설치

동,서 대비원 : 환자 진료 및 빈민 구휼을 담당하는 의료 기관

기타 : 혜민국(의약 전담), 구제도감,구급도감(임시 기관, 재해 발생 시 백성 구제), 제위보(기금 마련으로 빈민 구제)

 

혼인과 여성의 지위

혼인 : 일부일처제가 일반적, 고려 초 왕실에서는 친족 간의 혼인 유행

여성의 지위 : 재산 상속에서 남녀가 동등한 권리 가짐, 남녀 구분 없이 태어난 순서대로 호적에 기입, 아들이 없을 경우 딸이 제사 진행, 사위가 처가의 호적에 입적하기도 함, 사위와 외손자에게도 음서 혜택, 여성의 재가에 대한 자유로움

 

고려 후기의 사회 변화

신분제 동요, 백성에 대한 통제력 약화, 무신 권력자들의 농장 확대로 농민 수탈 심화가 배경이 됨

망이,망소이의 난(공주 명학소), 김사미,효심의 난(운문, 초전), 신분 해방 운동 : 만적의 난(개경)

 

 

 

8. 고려의 학문과 사상

 

유학

유학의 발달 :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채택하고 과거제를 실시하며 문치주의를 표방함

전기 : 자주적, 주체적

성종(6대 왕) : 유교 정치 사상 정립(최승로의 시무 28조), 유학 교육 기관 정비(국자감, 향교)

중기 : 보수적, 사대적(문벌 귀족 사회 발달)

최충 : 해동공자의 칭호, 9재 학당 건립

후기 : 형이상학적 측면보다 실천적 기능 중시, [소학], [주자가례]

성리학의 전래 : 충렬왕(25대 왕) 때 안향 등이 소개, 이제현(만권당) - 이색(성균관) - 정몽주,정도전에게 계승

영향 : 신진 사대부가 사회 개혁 사상으로 수용, 권문 세족과 불교 비판에 활용

 

교육기관

관학(공교육) : 국자감(유학부와 기술학부를 두어 관료와 기술 인력 양성), 향교(지방) 설립

사학(사교육) : 최충의 9재 학당(문헌공도) 등 사학 12도 융성

공교육 진흥책 :

예종(16대 왕)은 국자감에 7재(EBS) 설치, 양현고(장학 재단), 청연각,보문각(도서관) 설치

인종(17대 왕)은 경사 6학(학과)을 중심으로 교육 제도 정비

공민왕(31대 왕) 때 성균관(국자감이 국학, 성균감, 성균관으로 개칭)을 순수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

 

역사서 편찬

시기 역사서 특징
전기 왕조실록, 7대실록 고구려 계승 의식 표방
현재 전해지지 않음
중기 삼국사기(김부식) 왕명을 받아 편찬(인종, 17대 왕)
신라 계승 의식 표방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
기전체 사서
현존 최고의 역사서
후기 해동고승전(각훈) 우리나라 승려들의 전기를 기록
동명왕편(이규보)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수록
고구려 건국 시조 동명왕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
고구려 계승 의식 
삼국유사(일연) 불교사 중심, 고대 민간 설화 수록,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
제왕운기(이승휴) 단군부터 고려 충렬왕까지 역사를 서사시(오언시 형태)로 정리
단군왕검의 건국 이야기 기록
중국사인 상권과 우리 역사인 하권으로 구성
말기 사략(이제현) 성리학적 유교 사관
정통 의식과 대의명분 강조

 

불교

유교는 정치 이념, 불교는 정신적 지도 이념으로 삼음

태조 : 훈요 10조에서 불교와 숭상과 연등회, 팔관회의 성대한 개최를 당부

광종 : 승과 실시, 국사,왕사 제도 실시(신앙적으로 승려가 국가의 고문 역할 담당), 균여의 화엄종 성행(귀법사)

성종 : 연등회, 팔관회 중지(최승로의 시무 28조)

 

의천 : 화엄종 중심으로 교종 정리, 교종 중심의 선종 통합, 해동 천태종 창시, 교관겸수 제창

지눌 : 수선사 결사 제창(순천 송광사), 정혜쌍수와 돈오점수 주장(선종을 중심으로 교종 통합)

혜심 : 유불 일치설을 주장하며 유교와 불교와 조화 도모, 성리학 수용의 토대 마련

요세 : 참회를 중시하는 법화 신앙에 바탕을 둔 백련 결사 제창(강진 만덕사)

의천(문벌 귀족) 지눌(무신 집권기)
송으로 유학 -
국청사 중심 송광사 중심
천태종 창시(해동 천태종) 조계종 창시
교관겸수 제창 정혜쌍수, 돈오점수 제창
대각국사 의천 보조국사 지눌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 통합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 통합

 

도교

여러 신을 모시면서 나라의 안녕과 왕실의 번영을 기원

불로장생과 현세의 구복을 추구함, 교단을 성립하지 못한 채 민간 신앙 형태로 유지됨

 

풍수지리설

인문 지리학 지식에 도참사상이 가미됨(묘청)

태조는 훈요 10조에서 풍수지리를 강조함, 과거 시험 중 '지리업'이라는 풍수지리 과목을 채택

서경 길지설 : 북진 정책 추진,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됨

한양 명당설 : 한양을 남경으로 승격, 조선 수도 선정의 사상적 배경의 됨

 

 

 

9. 고려의 과학 기술, 문화유산

 

목판 인쇄술

초조대장경 : 현종(8대 왕) 때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작, 대구 부인사에서 보관 중 몽골 침입으로 소실

교장 : 의천이 교장도감 설치, 불교 경전에 대한 주석서를 모아 편찬, 개성 흥황사에서 보관 중 몽골 침입으로 소실

팔만대장경 : 재조대장경,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함,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대장도감 설치 후 제작,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조선 전기에 건립, 유네스코)에 보관

 

활판 인쇄술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 발명, [상정고금예문, 1234, 현존하지 않음], [직지심체요절, 1377,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 유네스코]

 

천문학 : 사천대(서운관) 설치, 천체,기상 관측 및 기록, 고려 초 당의 선명력 사용 - 후기에 원의 수시력 채용(역법)

의학 : 태의감(의학 교육, 의료 업무, 의과 시행), [향약구급방] 편찬, 우리나라 현존 최고의 의학 서적

화약 : 최무선이 화약 제조법을 터득하고 화통도감 설치 건의, 화약과 화포 제작

 

목조 건축

주심포 양식 : 안동 봉정사 극락전(현존 최고 목조 건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배흘림기둥), 예산 예산 수덕사 대웅전

다포 양식 : 사리원 성불사 응진전, 조선 시대에 영향

 

석탑

다각 다층탑이 많음, 안정감은 부족하나 자연스럽고 화려함

개성 불일사 5층 석탑 : 고구려 탑의 영향을 받은 고려 초기의 석탑

평창 월정사 8각 9층 석탑 : 다각 다층탑, 송의 영향, 문벌 귀족의 사치를 드러냄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 : 다각 다층탑, 고려 후기 원의 영향, 대리석으로 제작, 조선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으로 계승

 

불상

특징 : 지방색이 강하고 개성적인 불상이 많음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 고려 초기에 유행한 대형 철불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 입상,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 입상 : 지역적 특색, 대형 불상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석상 : 신라 양식 계승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 좌상 등

 

고려청자

신라와 발해의 전통 기술을 계승하고 송의 자기 기술을 수용하여 발달함

11세기 순수 청자의 발달, 12세기 중엽 상감 기술의 개발 및 상감 청자 생산, 14세기 원 간섭기 이후 퇴조

 

공예

귀족의 생활 도구와 불교 도구 중심으로 성장

청동 향로, 청동 정병(자기의 상감법 발달에 영향), 나전 칠기

 

그림

이령의 [예성강도], 공민왕의 [천산대렵도] 혜허의 [관음보살도], 김우문의 [수월관음도], [사경화](불교경전)

 

음악

아악(송의 대성악이 궁중 음악으로 발전), 향악(우리의 고유 음악) 

 

 

 

고려 시대(연도별)

900 견훤 후백제 건국 901 궁예 후고구려 건국 907 당 멸망, 오대십국 시대 916 요(거란) 건국, 야율아보기가 거란의 부족을 통일 918 고려 건국, 태조왕건 919 철원에서 송악으로 천도 926 발해 멸망,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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