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격증/한국사능력검정

통일 신라의 발전 ~ 남북국 시대

1. 삼국 통일 이후

 

무열왕(김춘추, 29대 왕)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직계 자손의 왕위 세습을 확립하여 왕권 안정 

상대등 세력의 견제를 위해 집사부와 그 책임자인 중시의 기능 강화, 귀족 세력의 약화 목적

당과 연합하여 백제 멸망시킴(660)

수도를 관리하는 사정부 설치

 

문무왕(30대 왕)

지방을 관리하는 외사정 설치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 멸망시킴(668)

매소성전투(675), 기벌포전투(676)에서 승리하여 당을 몰아내고 삼국 통일 완성(676)

 

신문왕(31대 왕)

장인 김흠돌의 난 진압(681), 진골 귀족 세력 숙청, 왕권 강화, 진골 귀족 세력 약화, 6두품 세력의 성장(집사부, 중시)

9주 5소경의 지방 행정 조직을 완성하여 중앙 집권 체제 마련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 약화를 위해 관료전 지급(노동력 징발 불가, 687), 녹읍 폐지(689) 

유교 정치 이념의 확립과 유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해 국학 설립(최고 교육 기관)

군사조직 중앙군 9서당, 지방군 10정 

문무왕의 뜻을 이어 감은사 창건, 만파식적

 

성덕왕(33대 왕)

당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빈번하게 사신 파견

국가의 토지 지배력 강화 및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백성에게 정전(토지 제도) 지급(722)

 

경덕왕(35대 왕)

집사부의 장관 중시, 시중으로 명칭 변경

한화 정책 추진 - 중국식 제도를 도입하여 체제 정비 및 왕권 확립을 도모

국학의 명칭을 태학감으로 변경, 박사와 조교를 두어 유학 교육을 강화

전제 왕권에 대한 귀족 세력의 반발로 녹읍이 부활(757)

 

중앙 통치 제도

집사부 기능 강화 : 왕명을 수행하고 기밀 사무를 수행하던 집사부와 집사부의 장관인 시중의 기능 강화

위화부를 비롯한 13부(14부)를 설치(행정 업무 분담)

관리들을 감찰하는 사정부(무열왕, 29대 왕) 설치

 

지방 제도 정비

9주 5소경 : 옛 고구려, 백제, 신라 땅을 나누어 9주를 설치

9주 : 주 장관의 명칭을 군주에서 총관으로 변경, 군사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행정적 기능을 강화

주의 밑으로 군,현을 두어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 군,현의 밑인 촌은 토착 세력인 촌주(지방관의 통제를 받음)를 임명

5소경 : 수도 금성(경주)의 지리적 취약성을 보완하고자 군사와 행정상의 5소경 설치

특수 행정 구역 : 향, 부곡(일반 군,현의 농민들보다 많은 공물 부담)

상수리 제도 :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지방 향리 또는 그의 자제를 수도 금성의 여러 관청에 보내에 근무하게 함

외사정 파견 :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해 감독관으로 외사정을 파견함

 

군사 조직 개편(9서당 10정)

중앙군(9서당)

지방군(10정) : 9주에 1정씩을 두고 국경지대(한주)에 2개의 정을 설치

 

유교 정치 이념의 강화

국학 설립 : 신문왕(31대 왕) 때 최고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박사와 조교를 두어 [논어], [효경] 등 유교 경전을 가르침

독서삼품과 실시 : 원성왕(38대 왕) 때 유학에 대한 이해 수준에 따라 관리를 채용하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지만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실패

 

 

 

2. 발해의 건국

 

고구려 멸망 이후 당은 많은 고구려 유민들을 이주시킴, 고구려 유민들은 곳곳에서 저항을 이어감

고구려 출신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을 이끌고 동모산 지역에 정착하여 발해 건국(698)

신라와 함께 남북국의 형태를 이루고 영역을 확대하여 옛 고구려 땅의 대부분을 차지함

 

무왕(대무예, 2대 왕, 8세기 전반)

우리 역사의 최고 상남자

중국과 대등한 지위에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독자적 연호 '인안' 사용

돌궐, 일본과 교류하여 당과 신라 견제

동생 대문예로 하여금 흑수 말갈 정벌 시도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 등주를 선제 공격(732)

 

문왕(대흠무, 3대 왕, 8세기 중후반)

독자적 연호 '대흥'

당과 우호를 맺고 친선관계 유지하며 문물을 받아들이고 체제 정비, 철리부 정벌

당의 3성 6부제를 기반으로 중앙 정치 조직을 정비, 독자적인 운용과 명칭 사용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 신라도, 거란도, 영주도

수도를 중경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로 옮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 고려(고구려) 국왕임을 표방, 고구려와 부여를 계승

 

선왕(10대 왕, 9세기 초)

독자적 연호 '건흥'

발해의 최고 전성기,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림, 주변 말갈 세력을 복속하고 만주와 연해주, 요동, 남으로 대동강 이북까지 확장하여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함, 5경 15부 62주의 지방 통치 체제를 완비

 

거란(요나라)의 침입으로 발해 멸망(926), 만주에 대한 우리 민족의 지배력 약화

 

 

 

3. 발해의 통치 체제 정비

 

중앙 정치 조직 정비 : 3성 6부, 당의 제도를 수용하였지만 독자적인 명칭과 운용

정당성의 최고 집행 기구화(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이 국정 총괄), 선조성, 중대성, 이원적 운영(좌사정, 우사정)

6부에 유교적 명칭 사용(충,인,의,지,예,신부)

중정대 : 관리의 비리 감찰 기구

주자감 : 발해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유학을 가르치고 당에 유학생을 보내기도 함

 

지방 행정 구역 : 선왕 때 5경 15부 62주 완비

5경, 전략적 요충지에 상경 용천부, 중경 현덕부, 동경 용원부, 남경 남해부, 서경 압록부 설치, 15부 62주, 촌락

군사 조직 : 중앙군으로 10위 조직, 지방은 각 지방관이 지휘

 

 

 

4. 발해의 성격

 

지배층의 대부분이 옛 고구려계로 구성, 고분 양식, 온돌, 연꽃무늬 수막새, 석등 등 고구려의 문화와 유사성을 가짐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표방, 문왕의 딸인 정혜 공주와 정효 공주의 묘비에 황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황제국 표방)

 

 

 

5. 통일신라 말의 혼란과 후삼국

 

혜공왕(36대 왕, 8세기 후반) 즉위 이후, 진골 귀족들의 권력 다툼이 심화, 혜공왕 피살 후 155년간 20명의 왕이 교체됨

 

김헌창의 난(822) : 아버지 김주원이 원성왕(38대 왕)에 밀려 왕위 다툼에서 밀려나자 웅천주(공주)에서 반란을 일으킴, 큰 세력으로 형성되었으나 정부군에 의해 진압

장보고의 난(846) : 청해진을 거점으로 해상권을 장학하고 권력을 키운 장보고가 왕위 다툼에 관여하고 자신의 딸을 왕비에 앉히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

 

신라 말 농민의 봉기

왕권 약화, 녹읍의 부활,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 등으로 국가재정이 궁핍해짐,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이 부과됨,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일부 농민들이 유량을 떠나고 초적이 됨

 

원종과 애노의 난(889, 진성여왕, 51대 왕), 적고적의 난(896, 진성여왕, 51대 왕), 왕권이 약해진 가운데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더욱 약화됨

 

 

 

6. 새로운 세력의 성장

 

호족의 성장 : 신라 말 진골 귀족 간의 왕위쟁탈전으로 인해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의 세력을 형성한 호족이 등장함, 호족들은 근거지에 성을 쌓고 사병을 보유함, 성주나 장군을 자칭하며 그 지방의 징세권, 행정, 군사권 등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함

 

6두품 출신 유학자, 선종 승려와 연합하여 신라 정부에 대항,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며 반독립적 세력으로 성장, 신라 말, 고려 초에 활동

 

6두품의 반신라화 : 능력보다 신분을 중시하는 골품제의 한계로 불만이 증대, 최치원이 진성여왕(51대 왕)에게 시무책 10조를 올리는 등 6두품 세력은 골품제를 비판하고 유학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치 이념을 제시하며 개혁 주장, 기득권 세력인 진골 귀족들의 반대로 좌절됨

 

신라 말, 반신라적 태도를 보이며 호족들과 결탁하여 새로운 사회를 추구함, 최언위, 최승우 등

 

 

 

7. 새로운 사상의 유행(신라 말)

 

선종 : 교리와 경전을 중시하는 전통적 권위(교종)를 부정하고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수 있음을 주장, 호족과 농민들의 호응과 후원을 받아 선종의 9개 종파인 9산 선문이 성립

 

풍수지리설 : 지리적 환경이 인간 생활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끼친다는 인문지리학, 도선을 중심으로 널리 보급, 지방의 중요성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며, 호족의 사상적 기반이 됨, 수도 경주의 왕권을 추락시킬 수 있는 사상이 됨

 

미륵 신앙 : 현재의 고통을 해방해 줄 미륵불이 나타나 중생을 구원하고 이상적 세계인 불국토를 건설한다고 주장한 사상, 시기가 혼란스러울 때 유행, 미륵불 숭배

 

 

 

8. 후삼국 형성

 

후백제(900) : 신라의 군인 출신 견훤이 전라도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후, 완산주(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 건국

중국의 후당, 오월(5당 10국, 당시의 중국은 당,송 교체기로 혼란의 시기)과도 외교 관계를 맺음 

견훤이 신라 금성에 침입해 경애왕(55대 왕, 박씨 왕조)을 죽게하는 등 신라에 적대적인 자세를 취함

농민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고 호족 세력 포섭에 실패

 

후고구려(901) : 신라 황족의 후예라 전해지는 궁예가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 건국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 국호를 '태봉'으로 변경

최고 중앙 관부인 광평성을 설치하여 내정을 총괄하게 함, 그 아래에 여러 관부를 설치하여 사무를 분담하였으며 9관등제 실시함

조세를 지나치게 수취하고, 궁예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하며 주변인들을 숙청하는 미친놈,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신하들의 추대 속에 고려를 건국(918)

 

 

 

9. 남북국의 경제,사회,문화

 

통일신라의 수취제도 정비

조세 : 농업 생산량의 1/10

공물 : 촌락 단위로 지역의 특산물 징수

역 : 군역(전쟁) 요역(건설)을 15~60세의 남자에게 부과

 

촌락지배(신라 촌락 문서) : 수취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촌주가 매년 촌락의 호구, 가축 및 유실수 등의 변동사항을 조사하여 3년마다 문서로 작성

 

토지 제도

신문왕(31) : 귀족들에게 토지와 그 토지에 거주하는 사람의 노동력 징발권까지 모두 부여하는 식읍을 제한, 관료들에게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 왕권 강화의 일환

성덕왕(33) : 백성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정전을 지급, 귀족을 견제하여 왕권 강화, 농민 경제의 안정 추구

경덕왕(35) : 귀족의 반발로 녹읍의 부활, 정전의 유명무실화

 

통일신라의 경제 활동

상업 : 동시 외에 서시와 남시가 설치됨

수공업 : 왕실과 귀족이 사용하는 물품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관청을 정비

국제무역 : 공무역과 사무역이 발달(당), 초기에는 제한하였으나 8세기 이후 활발해짐(왜), 신라 최대의 국제 무역항인 울산항에 이슬람 상인들이 왕래함(이슬람)

장보고의 활동 : 9세기 초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동아시아의 해상 무역을 장악함

중국 진출 : 당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당의 산둥반도와 양쯔강 하류에 신라방,신라촌,신라소,신라관 등이 생김

 

 

 

10. 남북국의 사회

 

민족 문화 발전 : 삼국의 혈연적 동질성, 문화적 공통성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가 발전하는 계기가 됨

민족 통합 노력 : 고구려와 백제의 지배층에게 신라의 관등을 수여하고, 수도의 치안과 방위를 담당하는 9서당에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함께 편성함

 

진골 귀족들이 중앙과 지방의 장관직을 독점하고 특권을 누림,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 악화

6두품은 학문적 식견과 실무 능력(최치원, 시무책 10여 조)을 바탕으로 국왕을 보좌하고 정치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섬

신분적 제약으로 승진에 한계가 존재, 신라를 떠나 당의 빈공과에 응시, 신라 말 사치 풍조가 진해짐

 

발해의 사회 구조

지배층은 대부분 왕족 대씨, 귀족 고씨, 고구려 유민으로 구성, 피지배층은 대부분 말갈인이며 일부 지배층으로 편입

당에 유학생을 파견하고 많은 발해인들이 빈공과에 응시하여 합격함, 당은 산둥반도의 등주에 발해관 설치

 

신라 말의 사회 모순

중앙 귀족 간 대토지 소유 확대로 국가 경제가 파탄, 사병을 육성하여 지방에서 힘을 키운 호족 등장, 조세의 부담이 가중되자 9세기 농민 봉기 확산

 

통일 신라의 학문(국학, 독서삼품과) 

김대문(진골) : 화랑세기, 계림잡전, 고승전, 한산기 등 저술, 주체적 문화의식 반영

강수(6두품) : 외교 문서 작성, 청방인문표

설총(6두품) : 이두를 정리하여 유학 연구 발전에 기여, 화왕계

최치원(6두품) : 당에서 활동, 토황소격문, 귀국 후 당에서 쓴 글을 모아 계원필경 저술, 시무책 10여 조

 

발해의 학문(주자감)

 

 

 

11. 남북국의 사상과 종교

 

불교사상의 발달(통일신라, 7세기 후반)

원효 대승기신론소 불교의 이해 기준 마련 아미타 신앙 전파, 불교의 대중화에 힘씀
십문화쟁론 일심사상, 화쟁사상 주장
의상 화엄일승법계도 의존적인 존재, 화엄사상 관음신앙 강조(구원)
혜초 왕오천축국전 서역 기행문  

발해 :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불교가 발전

 

 

 

12. 남북국의 문화유산

 

과학기술

목판 인쇄술 :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8세기 제작)

금속 기술 : 성덕 대왕 신종, 상원사 동종

 

고분

통일신라 : 불교 사상의 발전으로 화장 유행, 문무왕릉

굴식 돌방무덤(둘레 돌, 12지신상), 김유신 묘, 경주 원성왕릉

발해 : 정혜 공주 묘, 굴식 돌방무덤, 모줄임천장 구조, 돌사자상, 고구려 양식 계승

정효 공주 묘, 벽돌무덤 양식, 벽화(당의 영향), 묘지석의 도교적 표현, 고구려 양식의 천장 구조

 

건축과 

통일신라 : 불국사, 석굴암(경덕왕, 35대 왕, 김대성, 유네스코 세계 유산)

동궁과 월지(안압지) : 문무왕(30대 왕)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공 호수로 신라 조경술의 극치로 표현됨 

경주 감은사지 동,서 3층 석탑, 경주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경주 불국사 다보탑, 

발해 : 영광탑(벽돌탑), 주작 대로

 

불상과 공예

통일 신라 : 석굴암(본존불상, 보살상), 경산 팔공산 관봉 석좌여래 좌상, 무열왕릉비 받침돌, 법주사 쌍지등 석등,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 상원사 동종

발해 : 이불 병좌상(나란히 앉아있는 부처), (벽돌과 기와 무늬, 발해 석등, 돌사자상, 고구려의 영향), 발해 치미

'자격증 > 한국사능력검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연도별)  (0) 2022.01.25
조선 전기  (0) 2022.01.22
고려 시대  (0) 2022.01.21
삼국 시대 ~ 삼국의 통일  (0) 2022.01.19
구석기 시대 ~ 철기 시대, 고조선 및 주변 국가  (0) 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