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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한국사능력검정

근대 사회

중국 : 양무운동(동도서기론), 동양의 근본을 유지하되, 서양의 기술만을 수용

일본 : 메이지유신(문명개화론), 서양의 모든 것을 수용 

조선 : 쇄국정치(내부정리), 세도 정치 세력 척살


1.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의 정치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치

철종의 뒤를 이어 어린 고종이 즉위함에 따라 고종의 부친인 흥선대원군이 국정 주도(1863 ~ 1873)

인사 개혁 : 세도 정치 시기의 안동 김씨 축출, 당파보다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정치 개혁 : 비변사 축소,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 부활시켜 정치와 군사 업무 분담하게 함

법전 편찬 : 통치 체제 정비를 위해 [대전회통], [육전조례] 등 각종 법전 편찬

 

서원 정리 및 경복궁 재건

서원 철폐 : 민생 안정 및 왕권 강화

서원이 면세의 혜택을 누려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백성을 수탈하여 붕당의 근거지로 변절되는 등 폐단이 심해짐, 전국의 서원 600여개 중 47개만 남기고 서원 정리, 서원의 전지와 노비를 몰수하여 국가 재정 확충, 유생들의 강력한 반발

 

경복궁 중건 : 실추된 왕의 위엄을 회복하고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재건, 과도한 자금과 인력 동원으로 백성과 양반 모두에게 원성을 삼, 당백전 발행과 원납전 강제 징수, 물가 폭등 및 화폐 가치 하락

 

삼정의 개혁

경복궁 중건 이후, 수취 체제를 개혁하여 민생을 안정시키고자 함

전정의 개혁 : 토지 조사하는 양전 사업 실시, 미등록 토지 색출

군정의 개혁 : 호포제를 실시하여 군포를 양반에게도 징수함, 군정의 폐단 바로잡음

환곡의 개혁 : 마을 단위로 사창제 실시, 마을 안의 덕망 있고 부유한 지방 유지에게 맡김

 

통상 수교 거부 정책과 양요

프랑스 선교사들을 이용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목적으로 천주교에 관대, 프랑스와의 협상 실패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 정책으로 전환, 외세의 침략적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자주적으로 막아냈지만, 근대 문물의 수용을 늦추게 됨

 

(1866.1)병인박해 : 프랑스 신부를 포함하여 수천명의 천주교도 처형

(1866.7)제너럴셔먼호 사건 : 미국 상선이 대동강을 통해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 평안감사 박규수(개화사상가)가 격침

(1866.9)병인양요 : 병인박해로 프랑스 함대 강화도 침략, 양헌수 부대 정족산성에서 활약, 외규장각에 보관된 조선 왕조 의궤 등 각종 문화유산 약탈, 조선의 패전같은 승리로 프랑스 군대 물러감

(1868)오페르트 도굴 사건 :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통상을 요구하지만 거절함, 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연군의 묘 도굴 시도, 발각되어 사망, 서양인에 대한 반감 고조, 통상 거부 정책 강화

(1871)신미양요 :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 침략, 광성보에서 어재연 부대의 결사항전하지만 실패, 다시 조선의 패전같은 승리, 어재연 부대의 '수'자기 가져감

(1871)척화비 건립 : 신미양요 직후,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나타낸 척화비 세움

 

 

 

2. 개항과 서양 각국과의 조약 체결

 

개화 세력의 대두와 개화 정책의 추진

중국과 일본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 청과 활발히 교류하고 서양 문물을 수용하자는 북학파의 실학 사상을 계승(박지원 - 박규수), 양무운동과 메이지유신의 영향(1860년대)

 

개화파의 형성

박규수의 지도를 받은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김윤식, 서광범, 유길준 등이 1870년대 말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여 개화파 형성, 1880년대 정계로 진출함, 정부 개화 시책 추진

온건 개화파 : 청의 양무운동(동도서기론)을 모델로 삼아 점진적 개혁 주장, 친청 사대 정책, 김홍집, 김윤식, 민씨 등

급진 개화파 : 일본의 메이지유신(문명개화론)을 모델로 급진적 개혁 주장, 적극적인 수용,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등

 

위정척사 운동

서양 열강의 통상 요구, 개항, 정부의 개화 정책 등 유생들의 반발, 성리학적 정도를 지키고 사학과 이단을 물리침 주장

1860년대 : 통상 반대 운동 전개, 이항로,기정진 등 보수적 유학자, 척화 주전론을 주장하며 흥선대원군 지지

 

강화도 조약과 개항

조선 사회에 개항을 위한 내적 준비가 부족하지만 열강의 군사적 침략을 피하기 위해서는 개항이 불가피함을 역설함으로 통상 개화론이 대두됨, 박규수,오경석,유흥기 등이 주장함

 

(1873)흥선대원군 하야 :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반발하여 최익현의 계유상소

(1873)고종의 친정 체제 성립, 흥선대원군 하야 이후 민씨 일족의 집권, 국내외 정치의 변화 시작

(1875)운요호 사건 : 강화도에 군함을 파견하여 문호 개방 압력과 군사 도발

(1876)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 조선 측 대표가 강화도로 가서 조약을 체결함, 조선이 자주국임을 명시하고 부산, 원산, 인천을 개항, 해안 측량권과 치외 법권 규정함,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 불평등 조약, 일본이 조선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침략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함

(1876)조,일 수교 조규 부록 : 일본인 거류지 10리 제한, 개항장 내 일본 화폐 유통 가능

(1876)조,일 무역 규칙 : 일본 상품 무관세, 양곡의 무제한 유출 허용(물가폭등, 가내수공업 망함)

(1883)조,일 통상 장정 : 일본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 방곡령 시행 규정 추가, 최혜국 대우 인정

 

1870년대 : 개항 반대 운동 전개, 최익현,유인석 등, 왜양일체론 주장

 

개화 정책의 추진(동도서기론 입각)으로 관제와 군제를 개편

(1880)통리기무아문 : 개화 정책 총괄 기구 설치와 12사(개화 행정 담당) 설치

(1881)별기군 창설 : 5군영을 2영 체제로 개편하고 신식 군대인 별기군, 서양의 기술 수용, 일본인 교관 임명

 

(1876)수신사, 1차 파견, 김기수

(1880)수신사, 2차 파견, 김홍집이 [조선책략] 수입,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 대두

(1881)조사 시찰단 : 일본의 정세 파악과 개화 정책의 정보 수집, 암행어사 형태로 비밀리에 파견

(1881)영선사 : 청의 텐진에 김윤식 등 38명 파견, 근대식 무기 제조법, 군사 훈련법 습득의 목적

(1882)조,미 수호 통상 조약 : [조선책략]으로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 대두와 청의 알선으로 조약 체결,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 인정, 거중 조정, 낮은 세율과 관세 조항 규정으로 서양과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불평등 조약

(1883)기기창 설치 : 영선사 귀국 후 조선의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 설치 

(1883)보빙사 파견 : 미국과의 조약 체결 직후 최초로 서양에 파견된 사절단 

 

1880년대 : 개화 반대 운동 전개, 이만손,홍재학 등, [조선책략]의 주장에 거세게 반대함, 영남 만인소 상소문(1881)

 

임오군란

개화 도중 구식 군인들의 차별로 인한 반발(13개월치 월급 X), 일본의 경제적 침탈로 인한 농민들의 생활 피폐

(1882)구식 군인들의 봉기 : 구식 군인들이 선혜청과 정부 고관의 집 습격, 일본인 교관을 살해하고 빈민들과 합세하여 일본 공사관과 궁궐 습격, 명성황후 피신

군란 수습을 목적으로 흥선대원군의 재집권, 개화 정책 중단, 5군영 부활,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 폐지, 민씨 정권의 요청으로 군대를 파견한 청이 군란을 진압, 군란의 책임을 물어 흥선대원군을 청으로 압송, 1885 귀국

 

(1882)제물포 조약 체결 : 일본에 배상금을 지불하고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을 인정, 민씨 일파의 재집권, 청의 내정 간섭이 심해짐

(1882)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체결 : 조선을 청의 속국 규정, 청의 경제적 침투 강화, 청 상인에게 내지 통상권 허용

 

갑신정변

청의 내정 간섭의 심화, 급진 개화파의 정책 실패로 정치적 입지 약화되고 개화당(급진 개화파)에 대한 탄압이 심해짐,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 급진 개화파가 일본군의 지원을 약속받고 우정총국(우체국)의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수구 사대당(온건 개화파) 요인을 살해하며 정변을 일으킴(1884), 개혁 정강 14개조 마련, 민씨의 요청으로 파견된 청의 군대로 3일 만에 실패(三日天下)

 

개혁 정강 14조 : 청에 대한 사대 관계 폐지, 인민 평등권 확립, 해상공국(보부상) 폐지, 입헌 군주제 실시, 모든 재정의 일원화, 지조법 개혁(토지에 부과하는 조세에 대한 규정)  

 

(1884)한성 조약 체결 : 청의 개입으로 일본 대사관 파손, 조선이 일본에 배상금 지불

(1885)텐진 조약 체결 : 청,일 군대가 동시에 철수하고, 조선에 파병할 경우 서로에게 상호 통보를 약속,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양국 군대가 파견되는 명분이 됨, 조선 내 청의 영향력 강화

 

 

 

3. 동학 농민 운동

 

(1860)동학의 창시, 1890년대 탐관오리의 횡포와 외세의 경제적 침투에 반발한 농민들이 동학에 가입

 

교조 신원 운동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을 요구함, 삼례집회(1892), 서울 복합 상소(1893), 보은집회(1893, 탐관오리 숙청 등 정치적 요구가 추가됨)

 

고부 농민 봉기(1894.1)

탐관오리 업계 Top1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으로 반발한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킴, 전봉준 주도로 관아 점령 및 사발통문으로 동지 규합, 정부는 후임 군수 박원명을 파견하여 시정 약속을 하고 해산

 

1차 동학 농민 운동(1894.3)

고부 농민 봉기를 수습하기 위해 파견된 안핵사 병갑이 절친 이용태가 오히려 봉기의 주도자 색출 및 탄압,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 동학 지도자들이 농민군을 조직하고 무장에서 봉기,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주장하며 4대 강령과 격문 발표(백산 봉기), 국가 세금(쌀)의 40%가 오가는 전라도 주요 지역인 전주성 점령(1894.4.27)

 

전주성 점령에 위기를 느낀 정부는 청에 군사 지원 요청, 청이 도착하자 일본군도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군대 파견, 청일의 군대 파견으로 정부와 농민군 간에 전주 화약 성립(1894.5), 청일 군대의 철병과 폐정 개혁을 요구하며 자신 해산, 농민군의 집강소 설치,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를 통해 폐정 개혁안을 추진함, 정부는 내정 개혁을 위해 교정청을 설치하였지만 일본군의 배신으로 교정청은 군국기무처로 바뀌고 청일전쟁이 발발함

 

2차 동학 농민 운동(1894.9)

조선의 청일 군대 철수 요구, 일본군의 배신으로 경복궁 무단 점령, 친일 내각이 수립되며 일본의 내정 간섭이 시작됨(군국기무처 설치, 1차 갑오개혁 추진), 청일전쟁 발발

논산에서 동학의 남접(전봉준)과 북접(손병희)이 합세(남북접 연합), 서울로 북상하여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격전

(1894.11)우금치 전투 : 공주 우금치에서 대치하였지만 일본군에 대패, 농민군의 지도자 체포되며 동학 농민 운동 좌절

 

반봉건적 근대화 운동, 반외세적 민족 운동의 성격을 띄며 신분제 폐지, 과부 재가 허용 등 갑오개혁에 영향을 주어 봉건 체제의 붕괴를 촉진, 잔여 세력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구국 무장 투쟁이 활성화됨

 

 

 

4. 갑오개혁,을미개혁

 

제1차 갑오개혁(1894.7)

동학 농민군의 개혁 요구 등 개혁의 필요성 대두, 교정청을 설치하였으나 군국기무처(청일전쟁 중으로 조선에 적극 간섭할 수 없었고 군국기무처의 주도로 개혁이 자주적으로 실시됨)로 개편, 일본의 강요로 흥선대원군을 섭정으로 하는 제1차 김홍집(온건 개화파) 내각의 수립

 

개혁 내용

정치 개국 기년 사용 : 청의 연호 폐지, 청과의 사대 관계 청산
왕실 사무와 정부 사무 분리, 궁내부 신설
6조를 8아문으로 개편, 과거제 폐지, 경무청 신설(경찰제 도입)
경제 탁지아문으로 재정 일원화, 은본위 화폐 제도 실시
도량형 통일
사회 신분제 철폐 : 공,사노비 제도 폐지
인신매매 금지, 조혼 금지, 과부의 재가 허용, 고문과 연좌제 폐지

 

제2차 갑오개혁(1894.12)

일본이 청일전쟁의 승기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개혁을 간섭, 흥선대원군의 퇴진과 갑신정변의 주역인 박영효,서광범이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군국기무처 폐지, 제2차 김홍집 내각 성립 등이 이루어짐(박영효와 연립 내각)

(1895.1)홍범 14조 발표 : 최초의 근대적 헌법의 성격, 개혁의 방향 제시

 

개혁 내용

정치 의정부를 내각으로 개편
8아문을 7부로 개편
지방 행정 구역을 8도에서 23부로 개편(부,목,군,현은 군으로 통일)
지방관의 사법권,군사권 배제, 재판소 설치
군사 훈련대와 시위대 설치
경제 탁지부 산하에 관세사, 징세사 설치
육의전, 상리국(보부상 단체) 폐지
사회 교육입국 조서를 발표하여 근대적 교육 제도 마련, 한성 사범 학교 관제, 소학교 관제, 외국어 학교 관제
한성 사범 학교, 한성 외국어 학교 등 설립

 

을미개혁, 제3차 갑오개혁

(1895.4)삼국 간섭 :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청의 요동을 빼앗음,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일본을 압박하여 국토 반환 요구하여 돌려줌, 고종이 일본 견제를 위해 친러 정책 추진, 친러 내각 수립(제3차 김홍집 내각)

(1895.8)을미사변 : 친러 내각이 수립되면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약화, 명성 황후 시해, 을미사변 이후 친러 내각이 붕괴되고 친일 중심의 제4차 김홍집 내각 수립

 

개혁 내용

정치 '건양'이라는 연호 제정
군사 훈련대 폐지, 친위대(중앙), 진위대(지방) 설치
사회 단발령 실시, 태양력 사용, 종두법 시행
우체사 설치(우편 사무 재개), 소학교 설치

 

중단

(1895)을미의병 :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각지에서 의병 봉기, 유인석 등 위정척사파 주도, 고종의 의병 해산 권고 조칙으로 자진 해산, 이후 활빈당을 조직하여 반봉건, 반침략 운동 지속

(1896)아관 파천 :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김, 김홍집 내각 붕괴, 을미개혁 중단

 

의의와 한계

민족 내부에서의 근대화 노력, 개화 인사들과 농민층의 개혁 의지 반영, 봉건적인 전통 질서를 타파하는 근대적 개혁으로 독립 협회와 애국 계몽 운동에 영향을 주었지만 일본의 강요로 착수하였고 일본의 침략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 개혁, 토지 개혁 등 민중의 요구를 외면했다는 한계가 있음

 

 

 

5. 독립 협회와 대한 제국

 

아관 파천 직후 정세

아관 파천 이후 친일 내각이 붕괴되면서 친미, 특히 친러파 정권이 수립됨,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러시아가 장악하면서 내정 간섭과 이권 침탈 심화, 열강의 최혜국 대우를 내세우며 이권 침탈이 본격화되기 시작함

 

독립 협회

(1896.4)서재필(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미국으로 망명 후 귀국)이 독립신문 창간

(1896.7)서재필이 고문, 이완용이 위원장, 이상재,남궁억 등이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독립 협회 창립, 다양한 계층 참여, 국민들에게 자주 국권, 자유 민권, 자강 개혁 사상을 보급하고 민중의 정치의식을 고취하고자 함, 토론회,강연회,만민 공동회 등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한 대중 집회 개최, 보수 세력의 모함으로 해체(1898.12)

자주 국권 운동 고종의 환궁 요청
독립문 건립(1897.11)
만민 공동회를 통해 러시아의 이권 침탈 저지(1898.3)
한,러 은행 폐쇄, 절영도 조차 요구 저지
자유 민권 운동 국민 기본권 확보 운동
국민 참정권 운동, 근대적 개혁 추진을 목표로 함
자강 개혁 운동 관민 공동회 개최(1898.10) : 독립협회에 우호적인 내각 관료 참여, 헌의 6조 결의
의회 설립 운동 : 정부와 협상하여 중추원 관제 반포(근대적 형태의 입법 기관)

 

대한 제국과 광무개혁

독립 협회를 중심으로 1년만에 고종의 환궁(경운궁, 덕수궁)

(1897)대한 제국 선포 : 연호를 광무로 고치고 황제라 칭함,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 제국으로 변경

(1897)광무개혁 : 구본신참의 점진적 개혁 추구, 옛것을 근본으로 삼되 새것을 참고한다는 의미로 점진적 개혁을 표방

 

개혁 내용

정치 독립 협회의 정치 개혁 탄압, 황권 강화
대한국 국제 제정(1899) : 황제 중심의 전제 군주 국가이며 황제권은 무한함을 강조
한,청 통상 조약 체결(1899) : 중국과 대등한 국가임을 강조
이범윤을 간도 관리사로 파견(1903)
독도를 관할 영토로 명시(대한 제국 칙령 제41호)
군사 원수부 설치 : 황제가 군권 장악, 구본
무관 학교 설립(군사 교육 기관)
경제 황실 재정 개선
근대적 토지 소유권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양전 사업 실시, 신참
지계아문에서 근대적 토지 소유 증명서인 지계 발급
근대 시설 도입
교육 근대 기술 도입을 위해 유학생 파견
실업,기술 교육 학교 설립

 

 

 

6. 일제의 침략과 국권 피탈

 

러일 전쟁

(1902)영,일 동맹 : 삼국 간섭 이후 러시아와 일본의 대립 심화, 영국과 일본의 영,일 동맹 체결

(1903)용암포 사건 : 러시아가 용암포를 강제로 조차,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이 심화됨

(1904.1)국외 중립 선언 : 고종이 대한 제국은 국외 중립을 선언하지만 효과 없음

(1904.2)러,일 전쟁 발발 : 일본이 러시아를 선제 공격하면서 러,일 전쟁 발발

(1904.2)한,일 의정서 강제 체결 : 대한 제국 지켜주는 대신 간섭하겠다는 의지

(1905.7)가쓰라,태프트 밀약 체결 :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권리를 인정하는 대신 한국에 대한 일본의 우월권을 인정하는 조약 체결

(1905.8)제2차 영,일 동맹 :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이 일본의 한국 지배권을 인정

(1905.9)포츠머스 강화 조약 : 일본의 승리로 전쟁을 마무리, 러시아가 일본의 한국 지배권 인정

 

일제의 국권 침탈

(1904.8) 제1차 한,일 협약 : 러,일 전쟁 중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됨, 대한 제국은 일본의 동의 없이 일체의 재정 및 외교상의 일을 처리할 수 없음, 고문 정치 및 고문 파견, 일본인 메가타(재정)와 미국인 스티븐스(외교)가 고문으로 파견됨

(1905.11) 제2차 한,일 협약 : 을사늑약 : 러,일 전쟁 승리 후 한국을 보호국화 하는 협약 강제 체결, 외교권 박탈, 통감부 설치(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내정의 지배권 강화, 을사의병으로 이어짐

(1907.7)한,일 신협약 : 정미 7조약 : 일본인이 대한 제국의 요직을 차지하며 행정권 장악, 통감 정치 + 차관 정치 실시, 대한 제국 군대 해산 결정, 의병으로 합류하여 정미의병 일으킴

(1909.7)기유각서 : 사법권과 감옥에 대한 사무 박탈

(1910.6)경찰권 위탁 각서 : 경찰권 강탈

(1910.8)국권 강탈 : 대한 제국의 국권 상실, '한일 병합 조약, 경술국치'

 

고종의 대응

(1907)헤이그 특사 파견 :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일제의 침략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만국 평화 회의에 참여 시도, 외교권 문제를 구실로 고종의 강제 퇴위 요구

 

을사늑약 체결에 대한 반발

최익현, 신돌석 등 의병,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5적 암살단 조직, (1908, 장인환,전명운)스티븐스 저격, (1909, 안중근)하얼빈에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처단

 

 

 

7. 의병 항쟁

 

(1895)을미의병 :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대한 반발

(1905)을사의병 : 을사늑약으로 인해 일제의 침략 행위가 심해짐, 민종식,최익현 등 유생 의병장이 주도, 신돌석 등 평민 의병장이 등장하기 시작, 참여 계층의 확대와 전술이 변화하는 발전

(1907)정미의병 :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 7조약에 의한 군대 강제 해산, 합류한 군인들에 의해 의병 조직과 화력의 강화, 13도 연합 의병 부대(13도 창의군) 결성하여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법상 교전단체로 승인해 줄 것을 요구, 반란군이 아닌 대한 제국의 군대로 인정받길 원함, 서울 진공 작전(총대장 이인영, 군사장 허위) 전개, 일제의 대응으로 실패

(1909)남한 대토벌 : 일제의 대대적인 의병 토벌, 의병 전쟁 위축, 의병 부대가 간도,연해주 등 해외로 이주하면서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함

 

8. 애국 계몽 운동

 

의병과 동시간대 활동, 사회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산업 진흥을 통한 실력을 양성해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 지식인,관료,개혁적 유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짐, 무력 단체인 의병에 부정적 시선

 

주요 단체

보안회
1904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 운동 추진, 저지 성공
헌정 연구회
1905
독립 협회 계승, 국민의 정치의식 고취와 입헌 군주제 수립을 목표
일진회의 반민족 행위 규탄, 통감부의 탄압으로 해체
대한 자강회
1906
헌정 연구회 계승, 전국 25개 지회 설치
월보 간행, 강연회 개최
고종 황제 퇴위 반대 운동 전개,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1907)
대한 협회
1907
대한 자강회의 후신
교육 보급 및 산업 개발 등의 애국 계몽 활동 전개
활동 약화 과정에서 친일적 성격으로 변질

 

신민회(1907)

안창호, 양기탁, 이승훈 등 비밀 단체로 조직, 의병 단체에 우호적

독립 협회의 청년 회원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애국지사 등이 참여함, 베델,양기탁이 발행한 대한매일신보가 기관지 역할을 함, 국권 회복과 공화 정체의 근대 국민 국가 건설을 목표, 실력 양성과 무장 투쟁을 함께 추진함

민족 교육 : 평양에 대성 학교(안창호), 정주에 오산 학교(이승훈) 등 교육 기관 설립

민족 산업 육성 : 경제 자립을 주장하며 태극 서관, 자기 회사 등 설립

해외 독립군 기지 설립 : 남만주(서간도)의 삼원보에 독립군 기지 설립(신흥 강습소 설립, 신흥 무관 학교)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조직의 와해(1911)

 

 

 

9. 외세의 경제적 침탈

 

개항 초기, 일본 상인은 국내의 객주,여각,보부상 등을 매개로 중계 무역 활동 재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 체결되면서 청 상인의 내륙 진출, 청,일 상인들 간의 경쟁으로 국내 상인 피해

청,일 전쟁 이후 다시 일본 상인이 큰 우위를 점함

 

(1905)화폐 정리 사업 : 일본인 메가타가 주도하여 조선 화폐(백동화, 엽전)을 일본 화폐로 교환, 일본 제일 은행을 조선의 중앙은행으로 전환, 화폐의 상태에 따라 차등 교환, 국내의 상공업자들이 타격, 유통 화폐 부족 현상 발생으로 대한 제국의 재정이 일본에 예속되고 국내 은행이 파산하여 일본계 은행으로 흡수됨, 국채보상운동으로 전개

(1908)동양 척식 주식 회사 설립 : 대한 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약탈할 목적으로 설립

 

10. 경제적 구국 운동

 

방곡령 : 식량난 해소를 위해 곡물의 수출을 금지하는 명령

조,일 무역 규칙으로 일본 상인의 곡물 유출이 증가하여 가격이 폭등하고 흉년으로 국내 곡물이 부족해지자 국민의 삶이 악화됨, 지나친 곡물 유출을 막기 위해 방곡령 실시,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의 방곡령(1889) 실시, 조,일 통상 장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반발, 일본에게 배상금 지불

 

상권 수호 운동

청,일 상인들의 활동으로 국내 상인들이 타격을 입자 시전 상인들이 독립 협회와 연계하여 황국 중앙 총상회(1898) 및 국내 상회사를 설립함, 최초의 민간 은행인 조선은행, 한성은행, 한일은행 등이 설립

 

국채 보상 운동

화폐 정리 사업으로 인한 대한 제국 재정 예속화 정책에 대항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서광재, 서상돈 등이 중심이 되어 시작, 국채 보상 기성회가 조직되어 금주,금연 운동 등을 전개, 각종 애국 단체 및 언론(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의 호응으로 전국적인 모금 운동 전개, 친일 세력(일진회)의 방해, 양기탁을 보상금 횡령 누명의 씌워 구속하면서 중단됨

 

 

 

11. 근대 문물의 발달

 

철도 : 경인선(1899), 최초의 철도로 미국 착공 일본 완공, 경부선(1905),경의선(1906), 러,일 전쟁 중 일본이 부설

우편 : 우정총국 설치(1884), 우체사 설치(을미개혁)

전기 : 전등 가설(경복궁, 1887)

의료 : 서양 선교사들이 서양 의료 시설과 기술을 들여오면서 본격적으로 수용, 광혜원(1885),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알렌이 세운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으로 명칭 변경, 세브란스 병원(1904), 제중원 승계

 

기기창(1883) : 근대식 무기 제조, 청에 파견한 영선사 복귀 후 설치

전환국(1883) : 근대 화폐를 주조할 상설 조폐 기관, 필요성에 따라 설치

박문국(1883) : 인쇄,출판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 발행

 

독립문(1897) : 독립 협회의 주도, 프랑스 개선문 모방

명동 성당(1898) : 서양 고딕 건축 양식

덕수궁 석조전(1910) : 서양 르네상스 건축 양식

 

한성순보(1883-1884) : 최초의 근대적 신문, 정부 기관지적 성격, 갑신정변 당시 박문국 파괴

한성주보(1886-1888) : 한성순보 계승, 최초로 상업 광고 게재

독립신문(1896-1899) : 서재필이 창간한 최초의 민간 신문, 영문판 발행, 독립 협회에서 지속적으로 발행

황성신문(1898-1910) : 남궁억 발행, 을사늑약 이후 [시일야방성대곡] 게재(장지연), 국채보상운동 지원

대한매일신보(1904-1910) : 베델과 양기탁이 운영, 국채보상운동 지원, 의병 항쟁에 호의적 기사, 을사늑약의 부당성 주장, 신채호,박은식 등은 항일 의식 고취를 위해 애국 논설 게재

 

근대 교육의 시작 원산 학사(1883) :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 함경도 덕원
육영 공원(1886) : 최초의 근대식 공립 교육 기관, 외국인 교사 초빙, 고관 자제 중심
배재 학당(1885), 이화 학당(1886) 등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사립 학교
갑오개혁기 교육입국 조서 반표(1895), 한성 사범 학교 설립, 소학교, 외국어 학교 등 관립 학교 설립
광무개혁기 관립 중학교, 각종 실업 학교, 기술 교육 기관 설립
대한 제국 말기 오산 학교(1907), 대성 학교(1908) 등 민족주의계 학교 설립
일제의 사립 학교령(1908)으로 민족 교육 탄압

 

국어 : 국문 연구소(1907)를 설치하여 지석영,주시경 등을 중심으로 국어 문법의 연구와 정리, 철자법 등을 연구

역사 : 신채호 [독사신론, 1908]을 저술하여 민족주의 역사학의 연구 방향 제시, [이순신전], [을지문덕전] 등 위인전을 발간하여 애국심을 고취, [미국 독립사], [월남망국사] 등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함, 박은식

 

문학 : 이인직 [혈의 누], 이해조 [자유종], 안국선 [금수회의록] 등 계몽적 성격의 신소설,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 신체시, 외국 문학 번역, [천로 역정], [이솝 우화] 등

연극 :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 설립(1908, 이인직), 신소설 [은세계], [치악산] 등이 연극으로 공연

 

유교 : 박은식 [유교구신론] 발표, 실천적인 유교 정신 강조

불교 : 한용운 [조선 불교 유신론] 저술, 불교 개혁과 자주성 강조

천주교 : 고아원, 양로원 등을 통한 선교와 사회산업 활동, 경향신문 간행

천도교 :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1905), 민중 계몽을 위해 만세보 간행

대종교 : 나철, 오기호 등 단군 신앙을 바탕으로 창시(1909), 국권 피탈 이후 만주로 옮겨 무장 독립 투쟁 전개(중광단, 이후 북로군정서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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